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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유토피아: 공동체의정의,규칙과폭력,유토피아

by ju_bly 2025. 12. 20.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 <콘크리트유토피아>는 대지진 이후 폐허가 된 서울을 배경으로, 단 하나 남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형성되는 공동체의 구조와 권력의 변화를 다루는 작품입니다. 본 글은 감정적 감상이나 개인적 해석이 아니라, 재난 상황 속에서 공동체가 어떻게 규칙을 만들고 권력을 정당화하며, 결국 폭력적인 구조로 변질되는지를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특히 재난 이후 공동체의 정의, 규칙과 폭력의 제도화 과정, 그리고 유토피아라는 개념이 어떻게 착각으로 귀결되는지를 중심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구조적으로 해석합니다.

재난 이후 공동체의 정의

<콘크리트유토피아>는 재난 이후 인간이 가장 먼저 붙잡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것은 도덕도, 연대도 아닌 ‘소속’입니다. 영화 속 황궁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생존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장소로 설정되며, 이 공간에 속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생존 자격이 됩니다. 공동체는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배타성을 띠기 시작하며,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기준을 만들어 냅니다. 이 기준은 처음에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제한된 자원, 붕괴된 사회 시스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협 속에서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논리처럼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합리성’이 얼마나 빠르게 권력의 논리로 전환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스스로를 선택받은 생존자라고 인식하며, 그 인식은 곧 외부인을 위험 요소로 규정하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배타성이 특정 악인의 선동으로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대부분 평범한 시민이며, 재난 이전에는 특별한 권력을 행사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라는 틀 안에 들어서는 순간, 이들은 규칙을 만들고, 경계를 세우며, 소속되지 않은 이들을 배제하는 데 점점 익숙해집니다. 이는 공동체가 본질적으로 안전을 약속하는 동시에 폭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뭉쳤다고 믿지만, 그 결속은 언제든 외부를 향한 공격성으로 전환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결국 <콘크리트유토피아>는 재난 이후의 공동체를 따뜻한 연대의 공간이 아니라, 생존을 명분으로 배제와 차별을 합리화하는 구조로 정의하며, 인간이 모였을 때 발생하는 가장 원초적인 권력의 씨앗을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규칙과 폭력의 제도화

<콘크리트유토피아>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공동체 내부에 명확한 규칙과 지도자가 등장하는 순간입니다. 영화는 혼란 속에서 규칙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이 규칙들이 어떻게 폭력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기능하는지를 단계적으로 보여줍니다. 처음의 규칙은 생존을 위한 질서 유지 차원에서 출발합니다. 근무 배치, 식량 분배, 경비 순찰 등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이 반복되면서, 규칙을 정하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 사이의 권력 격차가 서서히 형성됩니다. 지도자는 공동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추대되지만, 동시에 판단과 결정의 독점자가 됩니다. 그의 결정은 곧 공동체의 정의가 되며, 이에 대한 의문은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됩니다. 이 과정에서 폭력은 점점 제도화됩니다. 개인의 분노나 충돌이 아니라, 규칙을 어긴 자에 대한 ‘처벌’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 지점을 통해 폭력이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폭력이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의 일부가 될 때, 그것은 죄책감 없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직접적인 가해자가 되지 않더라도, 규칙에 동의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언어입니다. 영화 속에서 배제와 처벌은 ‘공동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표현으로 포장되며, 폭력은 정당한 행위로 재정의됩니다. 이러한 언어적 장치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결국 <콘크리트유토피아>는 규칙이 많아질수록 공동체가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폭력이 구조화될 위험이 커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질서와 폭력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유토피아라는 착각

<콘크리트유토피아>의 제목이 암시하듯,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해체하고자 하는 것은 유토피아라는 개념 자체입니다. 황궁아파트는 외부의 폐허와 대비되며, 처음에는 안전하고 질서 있는 공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안전은 철저히 배타적이며, 내부 구성원만을 위한 조건부 유토피아입니다. 영화는 이 공간이 유지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배제와 희생이 필요한지를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유토피아를 유지하기 위해 공동체는 끊임없이 적을 필요로 하며, 그 적은 외부인일 수도 있고, 내부에서 규칙에 어긋난 누군가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유토피아가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개념임을 보여줍니다. 완벽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통제가 필요하고, 그 통제는 결국 인간성을 잠식합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들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해 행동하지 않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행동합니다. 이 지점에서 유토피아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며, 인간은 구조를 위한 부속품으로 전락합니다. <콘크리트유토피아>는 이 과정을 감정적으로 고조시키기보다, 차갑고 논리적으로 전개함으로써 관객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유도합니다. 과연 안전과 질서를 위해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의 끝에는 무엇이 남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합니다. 인간이 만든 유토피아는 언제나 누군가의 배제 위에 세워지며, 그 구조를 유지하는 순간 이미 유토피아는 붕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 작품은 재난 영화의 외피를 빌려, 현대 사회가 끊임없이 반복해 온 공동체와 권력의 실패를 응축된 공간 안에서 드러내는 사회적 알레고리로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