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살인의 추억>은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는 범죄 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범인을 잡는 성공담이 아닌 수사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조건이 놓여 있습니다. 본 글은 사건의 전개나 반전에 집중하기보다, 영화가 수사라는 제도를 어떻게 해체하고 재구성하는지를 분석적으로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둡니다. 특히 수사, 폭력, 시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 작품이 한국 사회의 제도적 한계와 인간 인식의 오류를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합니다.
수사라는 믿음의 한계
<살인의 추억>에서 수사는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합리적 과정으로 제시되지 않으며, 오히려 믿음과 확신이 어떻게 오류로 굳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형사들은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단서보다 결론을 먼저 상정하고, 그 결론에 맞춰 증거를 끼워 맞추는 방식을 반복합니다. 이는 수사가 객관적 탐색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답을 증명하기 위한 절차로 변질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특정 인물의 무능이나 악의로 설명하지 않고, 당시 사회적 조건과 제도적 한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결과로 제시합니다. 지방 경찰 조직의 열악한 환경, 과학수사의 부재, 상부의 실적 압박은 형사들로 하여금 신속한 결론을 요구하며, 이로 인해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가설은 사실로 오인됩니다. 중요한 점은 이 확신이 반복될수록 형사들 스스로도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수사는 점차 진실을 향한 과정이 아니라, 자기 확신을 유지하기 위한 방어 기제가 됩니다. 영화는 이러한 구조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믿음에 의존하며, 그 믿음이 제도적 권위를 얻는 순간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이 섹션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수사가 실패한 이유가 범인이 교묘했기 때문이 아니라, 수사 자체가 이미 진실에 도달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폭력과 권위의 수사 방식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고문과 폭력은 단순한 과거의 야만성을 재현하는 장면이 아니라, 권위가 어떻게 진실을 대체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장치입니다. 형사들은 증거가 부족할수록 폭력에 의존하며, 이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억누르기 위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폭력은 질문을 단축시키고, 침묵을 강요하며,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자백으로 환원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폭력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 내부에서 묵인되고 공유되는 관행이라는 점입니다. 상부의 지시는 명시적이지 않지만, 결과만을 요구하는 분위기는 폭력을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영화는 이러한 폭력적 수사가 결국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드러내며, 권위에 의해 만들어진 진실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자백은 확보되지만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확신은 커지지만 진실은 멀어집니다. 이 섹션의 핵심은 폭력이 수사를 빠르게 진행시키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수사의 가능성을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라는 점입니다. 권위와 폭력에 의존한 수사는 결국 진실이 아닌 허상을 강화하며, 그 허상은 제도가 유지되는 동안 반복됩니다.
미완의 결말이 남긴 시선
<살인의 추억>의 결말은 범인을 잡지 못한 실패로 끝나지만, 이 실패는 단순한 좌절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완성하는 장치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사건 현장을 찾는 장면에서, 형사는 더 이상 확신에 찬 시선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과거에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던 눈빛이, 이제는 알 수 없음 자체를 받아들이는 시선으로 변합니다. 이 변화는 개인의 성장이 아니라, 수사라는 제도와 인간 인식의 한계를 인식하게 된 결과입니다. 영화는 범인을 특정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에게 불완전함을 남기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질문을 지속하도록 유도합니다. 누구도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무력함이 아니라, 오히려 성찰의 출발점으로 제시됩니다. 마지막 시선은 관객을 향해 열려 있으며, 이는 이 이야기가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현재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암시입니다. 수사가 실패했음에도 영화가 강한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진실을 찾지 못한 결과가 아니라 진실을 찾는 방식 자체를 되묻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범죄를 해결하지 못한 영화가 아니라,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제도와 인간의 한계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