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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꾼다는 것의 의미 : 라라랜드

by 느린숨 2025. 6. 17.

 

라라랜드 포스터 사진

 

 

화려한 색채, 황홀한 음악,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언뜻 보면 '라라랜드'는 전형적인 뮤지컬 로맨스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40대 여성이 이 영화를 다시 바라보는 순간, 그 안에 숨겨진 ‘삶’의 본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선택과 타협, 포기와 후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꿈꾸고 싶은 마음. ‘라라랜드’는 더 이상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용기와 방향을 묻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젊은 날의 꿈이 멀게만 느껴지는 이 시기,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

 

 

 

포기와 선택의 교차로에서 만난 감정

우리는 모두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위에 서서 살아간다. 특히 40대는 선택의 무게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시기다. 젊을 때는 후회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어떤 선택도 되돌릴 수 없는 책임으로 남는다. 라라랜드 속 미아는 수차례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세바스찬은 생계를 위해 타협하며 본래의 음악을 잠시 내려놓는다. 이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미아처럼, 한때 열정을 쏟던 일이 있었고, 세바스찬처럼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 현실이라는 이름 앞에서 작아졌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가족을 돌보느라 내 꿈을 뒤로 미뤘던 지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렇다고 꿈을 버린 건 아니었다. 다만 잠시 접어둔 것이었다. 라라랜드는 말한다. “모든 선택이 옳을 수는 없지만, 그 선택 속에도 삶의 진심이 있다”고.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미아가 자신의 1인 연극을 아무도 보지 않은 후 좌절하는 장면이다. 그때 세바스찬은 말한다. "당신은 특별하니까 끝까지 해봐야 해." 이 대사는 사랑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잊고 지낸 ‘나 자신을 믿는 용기’에 대한 메시지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떤 선택 앞에 서 있든, 포기보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라라랜드가 전하는 첫 번째 감정의 울림이다.

 

 

 

현실의 무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은 오랜 시간 관객의 가슴에 남는다. 미아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키우고 있고, 세바스찬은 자신의 재즈 클럽을 열어 꿈을 이룬다. 우연히 클럽에서 재회한 두 사람. 그리고 이어지는 ‘상상 속의 삶’은 마치 그들이 함께했을지도 모를 평행우주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끝나고, 마지막에 서로 눈빛을 나눈 뒤 조용히 웃는 장면에서 이 영화는 사랑의 아쉬움을 넘어선 깊은 인생의 통찰을 전한다. 40대가 되면 누구나 하나쯤 ‘이루지 못한 이야기’를 마음속에 품고 산다. 어떤 사람은 그게 직업이고, 어떤 사람은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장소일 수도 있다. 그 모든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안다. 라라랜드는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말한다. "그래도,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결국 각자의 꿈을 이루었고, 서로를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들이 있을 수 있었다. 이 메시지는 중년의 우리에게 강력한 위로가 된다. 과거의 선택을 원망하기보다, 지금의 자리에서 조금 더 따뜻하게 자신을 안아주는 것. 그게 라라랜드가 전하는 두 번째 삶의 여운이다.

 

 

 

다시 꾸는 꿈, 지금 이 순간의 용기

라라랜드를 보고 난 후, 오랜 시간 멍하니 생각에 잠기게 된다. 영화가 끝나도 음악은 계속 귓가에 맴돌고, 화면은 암전되었지만 감정은 계속 살아 있다. "나는 지금도 꿈을 꿀 수 있을까?" 이 질문은 20대와 30대에겐 진취적인 동기일 수 있지만, 40대 여성에겐 더 이상 ‘도전’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이제 꿈은 생존과의 조화 속에서 자리해야 한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말한다. "꿈은 형태를 바꾸어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글을 쓰고 싶었던 마음은 SNS 글귀로, 연기를 하고 싶던 마음은 아이의 연극 연습을 도와주는 것으로, 음악을 하고 싶던 열망은 작은 피아노 앞에서의 짧은 연주로도 충분히 살아 있을 수 있다. 라라랜드는 이런 소소한 꿈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해준다. 작아진 꿈일지라도, 그 꿈이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하고,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감동을 전한다. 중년의 여성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매일을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려는 마음이다. 라라랜드는 그 마음의 불씨를 다시 지펴주는 영화다. 그리고 그 불씨는 오늘 하루를 더 다정하게, 더 음악처럼 살아가게 해준다.

라라랜드는 꿈을 향해 질주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안에서 보이는 것은 오히려 현실과 감정 사이에서 묵묵히 자신을 지켜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히 40대 여성의 시선에서 이 영화는 후회와 위로, 성장과 용기의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인생 영화가 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라라랜드를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전히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